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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08 11:15
박열 '전향' 의혹에 대한 기념관의 입장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29  

지난 201861일 한겨레신문에 게재 된 서경식 칼럼 쓰라린 진실- 영화 박열을 보고에 대하여 박열의사기념관의 입장을 밝힙니다.

 

위 칼럼의 主旨현 사회의 편향적 시각을 경계하고 진실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우리 기념관은 칼럼이 가지는 성격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시평에 대해서는 개인의 생각을 최대한 존중하고자 합니다.


 다만, 논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박열 선생의 전향이 확실하다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필자는 영화 박열을 예로 들며 그를 단순히 영웅시할 것만 아니라 전향의 쓰라린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박열의 전향 근거로 야마다 쇼지(山田昭次) 교수의 글을 인용하였습니다.


 인물의 삶과 사상을 평가하는 데에는 史料를 인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충분한 교차 검증과 토론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1996년 출판된 야마다 쇼지(󰡔金子文子自己天皇制国家朝鮮人󰡕, 影書房, 1996)의 견해만을 전적으로 신뢰하였습니다.


 야마다 쇼지의 책은 방대한 사료와 연구사를 검토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깊으나, 일본의 시각 아래 기술함으로써 그 한계가 없지 않습니다. 또한 가네코 후미코의 삶을 조명하는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에, 박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평가를 국내학계에서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이 책을 인용하는 데에는 비판적 시각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 책에서 본 칼럼이 인용한 박열 전향의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 역시 천황폐하의 적자로서응분의 책무와 분담의 광영을 부여받은 것을 생각하면 매우 기쁘다”(193589일자 <동아일보>)

 

현영섭의 내선일체론 조선인이 나아가야 할 길에 찬동하여 신속히 내지(일본)인과 합체하여 새로운 민족을 형성하고 빨리 내선융화를 완성하여 한일합병의 결실을 거둘 필요가 있다고 표명.

 

1945년 일본 패전 뒤인 1027일에 출소해 전향 이후 일본인으로 살기로 맹세한 이상 사회가 받아들여주지 않더라도 나는 일본인으로 살고 싶다. 이것은 폐하의 능위(천황의 위엄과 권위)에 따른 것”(19451019일자 <山形新聞)>)

 

이는 박열 전향관련 사료 중 일부만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입니다.

 

위 사료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이전 작성한 박열의 문투와 현저히 다르다는 점 고등경찰이나 검사국 회보에만 게재되어 있을 뿐 일본 및 국내 신문이나 잡지 등에는 전혀 소개되지 않았다는 점 유사 사례의 경우 전향 즉시 석방이나 감형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박열은 그러지 않고 패전 후인 19451027일에 맥아더사령부에 의해 석방되었다는 점 옥중 박열의 수형태도와 작성 한 시의 내용 정태성·장상중·최갑룡 등의 회고에서 전향이 날조되었음을 밝히고 있다는 점 등에서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이상 김명섭, 2008, 한국 아나키스트들의 독립운동, 이학사 ; 김인덕, 2013, 극일에서 분단을 넘은 박애주의자 박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등 참조)


이러한 학계의 연구성과에 따라 2005년 국가보훈처 주관의 이달의 독립운동가선정 때에도 위 내용에 대한 국내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수렴 과정을 진행하였으며, 종합적 토론 끝에 전향이 아닌 것으로 판정하여 20068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고, 독립기념관 발행의 한국의 독립운동가열전도 제작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설사 칼럼 필자와 야마다 쇼지의 주장대로 사료를 극히 신뢰한다 하더라도, 일제 패망 후 2개월이상 지난 1027일에 이르러셔야 석방된 사실, 이후 박열 선생의 인터뷰 내용과 저서(신조선혁명론), 동지들의 반응 등을 종합해 보았을 때 전향으로 확정할 수 있는 논거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할 것입니다. 따라서 박열의 전향은 단편적인 사료만 보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출옥 후에 <山形新聞>(1945. 10.19) 신문 인터뷰 내용도 의문스럽습니다. 이 신문 내용에 따르면 박열은 일왕의 신민이 됐기 때문에 일본인으로서 살아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박열은 1027일 다른 신문사를 방문해 조선인으로서 조선을 위해 일하고 싶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19451028일자, <山形魁新聞>). 또한 1945128일 도쿄에서 열린 한인 집회에서 인민의 적 일본 천황을 전범자로 체포하라고 절규하기도 하였습니다(19451210일자, <自由新聞>). 따라서 칼럼에서 인용한 <山形新聞>의 단편적인 기사만으로는 박열의 전향과 출옥 후 행적을 규정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학계의 충분한 숙고와 논의에도 불구하고, 61일자 한겨레 칼럼은 박열선생이 전향했다고 단정하여 독자들이 박열 의사의 행적에 대해 오해할 소지를 남겼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박열의사기념관은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앞으로도 박열의사기념관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둘러싼 여러 의혹들에 대하여 학술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이를 바로잡아 나아갈 것입니다. 두 분의 삶이 후세에 올바르게 전해질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 무단 전재 및 변형 금지. 본 글에 대한 의문이나, 인용에 대해서는 기념관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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